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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좀 더 유연한 사고로 세상을 넓게 바라봐야 한다. 박환수(조선이공대 교수)

별로 크지도 않은 지방신문의 칼럼 한 줄 쓰는 것이 가끔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요즘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사건들을 놓고 그동안 살아 온 세월과 견주어 보면서 이것이 보편적이고 상식적인가,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은데 그리 쉽지가 않다. 내 생각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의 차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돌아가는 세상의 이슈를 들먹이기 전에 조선시대 인조의 치욕적인 병자호란 역사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세상을 조망해 본다. 변변한 군사력도 없고 그렇다고 외교를 잘한 것도 없는 그때에 인조는 청나라에게 항복하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했다. 청 태종 앞에서 무릎을 1번 꿇을 때마다 머리를 3번 조아려서 총 9번의 비참한 머리 박기를 행한 것이었다.
인조라는 임금을 섬기면서 나라가 이 꼴이 되도록 보좌를 못한 신하들은 도리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사대부가 더러운 임금 섬기기를 부끄러워하고 . . .’하면서 청나라에게 항복한 인조를 능멸했다. 그래도 광해군을 몰아내고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준 신하들이기에 인조는 무기력하게 신하들 눈치만 살폈다.
그런 신하들이 청나라가 화해조건으로 세자와 판서(지금의 장관)들의 자식들을 청나라에 인질로 보낼 것을 요구하자 자기 자식들을 인질로 보내지 않으려고 그 높은 판서자리를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사직서를 내고 나가 버렸다. 더러운 임금보다 더 더러운 신하들 놈이었다. 당파싸움마다 백성을 들먹이는 그 자들은 백성들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가는 것에도 일말의 양심도 없었다.
인조실록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被擄子女望見, 號哭皆曰: "吾君、吾君, 捨我而去乎?" 挾路啼號者, 以萬數。사로잡힌 자녀들이 바라보고 울부짖으며 모두 말하기를,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였는데, 길을 끼고 울며 부르짖는 자(청으로 인질, 노예 등으로 끌려가는 사람)가 만 명을 헤아렸다.

 이제는 현재로 돌아와 보자. 매주 단위로 국내의 여러 여론조사 기관들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를 측정해 발표하고 있다. 취임 초기 최고의 지지도를 나타냈던 여론은 최근 34%까지 떨어졌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지역과 연령층에서 60%가 넘게 부정적 지지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특이하게 40대와 이 지역은 잘한다는 평가가 50%를 넘고 있다. 
대통령과 현 정부의 출범 초기에는 국민 대부분이 잘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것,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주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기대만큼 실망도 커 서서히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겪는 현실이 그렇고 정부의 통계수치가 그런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민심과 언론은 여전히 잘하고 있다거나 세계의 경제가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침체된 상태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는 잘하고 있고 곧 좋아질 것이라 말하고 국민들은 여전히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이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은 끝까지 변하지 않는 확증 편향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한 사고로 넓게 살펴볼 수 있어야 진정한 소통과 화합이 이루어 질 것이다.

장광호 편집국장  d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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